아름다움마을 신문에 신한열 수사님 인터뷰 기사가 올라왔네요.
한번 읽어보세요. ( 아름다운마을 신문 http://admaeul.tistory.com/292 )
신한열 수사님은 프랑스 떼제공동체에서 종신 수사로 28년째 살고 있어요.
28년이라는 세월이 짧지 않은데, 어떤 간절한 바람으로 지내시는지 늘 궁금하고 존경하는 마음이 생기곤 합니다.
떼제 공동체에서는 1997년부터 북측에 여러 인도적 지원을 해오고 있고, 그 일을 신한열 수사님이 책임감을 가지고 하고 있어요.
남과 북을 오가며, 동아시아의 여러 나라들을 연결하는 활동이 앞으로도 지속되길 바랍니다.
"저는 경상도 대구 출신이에요. 보수적인 지역에 있는 전형적인 유교가정에서 어머님이 먼저 가톨릭 세례를 받으셨는데 집안에서 특별히 신앙적인 갈등이 있지는 않았어요. 70년대 유신정권 시절 대구 사회나 교회 분위기가 사회적 관심이 적었어요. 함석헌 선생 같은 재야인사 강연이나 <씨알의 소리> 모임에서 그런 이야기를 접할 수 있었지요. 80년 광주민주화운동도 당시 대구에서는 유언비어라고 했는데, 광주에서 신학교를 다닌 선배들에게 간간이 들을 수 있었어요. 81년 서울로 대학을 오게 되면서 사회과학도로서 인간과 사회와 역사와 하느님에 대해 질문을 가지고 공부도 하고 학생회 활동을 했어요.
직장생활을 하면서 우리 사회 다양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어요. 진폐환자들이나, 성남 인력시장 노동자들 이야기를 글로 썼지만 나는 무엇을 살고 있는가 하는 질문이 들었어요. 20대 중반 2~3년 가난한 나라에 가서 살아보고 싶은 마음이 있었어요. 고등학교 때 책으로 떼제를 알고 있었는데, 하나님의 부르심으로 떼제에서 살게 되면서 삶의 일부가 아니라 평생을 사는 것, 일부를 바치는 것이 아니라 전부를 바치기를 바라시는구나 하는 걸 느꼈지요."
"1997년 당시 원장 로제 수사님이 100만 프랑이 생겼는데 제게 '누구를 위해 쓸까?' 하고 물어보셨어요. 떼제공동체는 일원 중 누군가 유산 상속을 받으면 바로 씁니다. 우리를 위해서가 아니라 남을 위해서요. 그때 식량 부족으로 곤란에 처한 북한을 돕자고 했더니, '좋다, 당장 시작하자'고 하셨어요. 오스트리아에서 유럽젊은이모임을 할 때였는데, 떨리는 마음으로 바로 북한대사관에 전화해서 찾아간 다음에 중국에서 옥수수 900톤 가량 사서 보냈어요. 그때부터 돈이 많으면 많은 대로, 적으면 적은대로 지원을 계속해왔지요.
"동아시아 나라들이 지역적으로 역사적으로 가깝긴 하지만 실제로 관계가 많지는 않아요. 일본도 한국도 옆 나라보다 미국이나 유럽을 바라보잖아요. 소위 한류라는 것도 촉매는 상업적인 것이지요. 상업적 이윤을 넘어 신앙이라는 공통기반으로 기도하고, 정말 중요한 것은 평화를 이룩하는 것이죠. 여전히 갈등하고 대립하는데, 정치인들이 할 역할도 있지만, 그리스도인, 특히 청년들이 할 역할이 있다고 생각해요. 첫 걸음은 서로 만나고 이해하는 거예요. 동아시아 청년들을 서로 엮어주려고 재작년 대전에서 동아시아 젊은이모임을 열었고, 올해는 홍콩에서 하기로 했습니다. 다가오는 2017년에는 큰 규모의 청년모임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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