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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와 화해의 순례

2013 평화와 화해의 순례 후기(1)

2013 평화와 화해의 순례 후기(1)


이 시대 평화와 화해를 염원하는 청년들이 2013년 9월 13~14일 강화도, 파주 접경일대를 걸으며 대화하며 기도하며 순례했습니다. 순례를 이끈 신한열 수사님은 1988년부터 뗴제공동체에서 살고 계시며 2012년 6월 아름다운마을공동체를 방문하셨고 다양한 연합활동을 하고 계십니다. 평화와 화해의 순례에 다녀오신 소감문을 아름다운마을신문에 기고해주셨습니다(편집자 주).



추석을 앞둔 토요일, 철조망의 장벽이 높게 세워진 분단의 길을 다양한 배경의 젊은 그리스도인 35명이 함께 걸었다. 임진각에서 출발하여 북한이 눈앞에 보이는 초평도, 장산전망대를 거쳐 화석정, 율곡리 습지공원에 이르는 '평화누리길'이다. 침가자들은 전날 저녁 서울 종로5가에서 만나 서로 소개하는 시간을 먼저 가지고 각자 이번 순례에 참가한 동기를 얘기했다.


"북한을 생각하면 우울하고 슬퍼진다", "평소에 분단 상황을 잊고 무심하게 지낸 것을 반성한다", "가정과 직장에서 소통이 너무 어렵다","한국사회는 분열의 단계를 넘어 분쇄되는 지경에 이른 것 같다", "이념 대결과 편 가르기가 만연한 이 땅에서 화해를 위해서 기도하고 싶다" "시리아와 세계의 평화를 염원한다" 등의 나눔이 이어졌다. 이날 밤 참가자들은 자신과 주위, 이 땅의 모든 분열의 아픔과 무거운 짐을 주님께 맡기는 공동기도(예배)를 드렸다. 긴 침묵의 시간이 있었고 어둠을 밝히는 빛을 상징하는 촛불을 손에 들고 함께 찬양했다.


이번 순례는 인원 구성에서 좀 독특했다. 개신교 여러 교단뿐 아니라 가톨릭과 성공회 신자들도 함께 했다. 프랑스 떼제공동체에서 여러 달 살았던 청년들과 아름다운마을공동체 지체들이 여럿 참가했다. 북한을 위해 기도해온 스웨덴의 스티나는 이번 순례 바로 전에 한국에 도착했다. 한국에 온지 3년이 된 스페인 가톨릭선교사 에스더와 참여연대에서 인턴을 하는 홍콩 청년 파니도 합류했다. 20대와 30대가 대부분이었지만 40대와 50대도 함께 섞였다.


함께 걷기 전에 서로 만나 알아가는 과정이 벌써 순례였다. 예배시간에는 영어와 스웨덴 말로도 성경을 읽었고 스페인 말로도 노래를 불렀다. 모두 손에 손잡고 각자의 모국어로 주님의 기도를 드렸다. 주님의 기도는 한국어만 해도 가톨릭용과 성공회용 개신교의 옛 번역과 새 번역 등 네 가지였다! 다양성 안에서의 일치는 이렇게 구체적으로 경험되었다.



토요일 순례에서도 여는 예배와 낮기도, 순례를 마치며 드린 공동예배는 모두 떼제의 찬양과 성경봉독, 긴 침묵, 일련의 짧은 중보기도로 이루어졌다. 전날 예배와 마찬가지로 설교는 없었다. 내가 강의하기보다 서로 생각을 나누고 침묵하는 것이 더 필요하다고 느꼈다. 사실 이번 순례 때 묵상한 성경구절들은 모두 그대로 가슴에 와닿는 말씀이었다. 예배는 그것을 마음 속에 새기고 말씀대로 살기를 다짐하면서 그렇게 할 힘을 구하는 시간이었다. 예수님을 사랑하는 이들이 같은 성경말씀을 묵상하며 예배 안에서 함께 침묵하고 찬양하는 가운데 우리는 '눈에 보이는 일치'를 체험했다. 다름이 장애가 되지 않을뿐더러 우리를 더욱 풍부하게 한다는 것, 또 교회와 전통은 다르더라도 우리를 하나로 모으는 것이 우리를 분열시키는 것보다 더 많고 중요하다는 사실을 느끼고 배울 수 있었다.


가까이 있으면서도 멀어진 형제와 이웃이 어디 북한뿐이랴. 화해가 필요한 곳은 남북한 사이만이 아니라 우리 사회 도처에 있다. 서울과 지방, 가진 이들과 덜 가진 이들, 보수와 진보, 사용자와 노동자, 농촌과 도시, 기성세대와 젊은이들…. 그리스도를 주님이라 고백하면서도 여전히 분열된 교회는 또 어떤가? 교리와 전통의 차이를 인정하지 않고 무지와 편견에 사로잡혀 불신과 의혹의 눈길로 서로를 바라보는 경우도 적지 않다. 그리스도의 몸이 분열되어 있으면 복음은 힘을 잃어버린다. 누구를 탓하기보다 "그리스도는 우리의 평화"라 고백하는 이들이 먼저 하나되려 노력해야 하지 않을까? 치유도, 평화도, 화해도 우리 안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한국 사회에 만연한 편 가르기에 젊은 그리스도인이 동참하지 않고, 충돌과 대립이 갈라놓은 그 길을 화해와 평화의 길로 바꾸는 발걸음이 계속 이어지기를 기도한다. 이번 순례가 삶 속에서의 대화와 만남으로 이어지고 더 큰 화해, 가시적인 일치를 향한 노력으로

연결되기를, 또 우리가 속한 공동체들이 이를 위해 누룩의 역할을 하기를 간절히 바라며 두 손을 모은다. 다음은 이번 순례에 우리를 동반한 성경구절이다.


"누가 누구에게 불평할 일이 있더라도, 서로 용납하여 주고, 서로 용서하여 주십시오. 주님께서 여러분을 용서하신 것과 같이, 여러분도 서로 용서하십시오. 이 모든 것 위에 사랑을 더하십시오. 사랑은 완전하게 묶는 띠입니다. 그리스도의 평화가 여러분의 마음을 지배하게 하십시오. 이 평화를 누리도록 여러분은 부르심을 받아 한 몸이 되었습니다.(골로새 3:13~15)"



타인을 새롭게 만나는 경험


임진각에서 보이는 도로를 따라 몇 분만 더 가면 바로 개성이라는 사실과, 조금만 헤엄쳐 건너면 바로 닿을 수 있는 곳이 군사지역이라서 들어갈 수 없다는 사실이 참 낯설었습니다. 그런데 이번 순례에서는 함께 걸어갔던 그 물리적인 공간보다도 평화를 염원하며 찾아온 다양한 사람들과의 만남이 더 기억에 남습니다. 그 길을 걸으며 이야기 나눴던 사람들과의 만남은 짧지만 묵직했습니다. 국적, 연령, 종교와 종파 또한 다양한 사람들과 함께 걸었습니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다양한 질문을 서로 건네며 자연스레 서로의 이야기를 나눠주었지요.


우리 사회는 타인의 생각과 삶에 대해 관심 갖고 질문하는 습관보다는 타인에게 관심없이 그저 나 자신에게만 집중된 삶의 습관이 더 깊이 자리 잡고 있는 것 같습니다. 또 상대방에 대해 일정하게 규정된 생각을 갖고, 상대방을 알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결국 상대방을 새롭게 보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삶의 태도가 이 세상에서 얼마나 많은 분열을 만들어내고, 평화를 해치는지 생각해보게 됩니다. 수많은 소통의 단절은 이렇듯 서로를 새롭게 보지 못함에서부터 출발하는 것이 아닐까요. 순례를 하며 만나게 되는 여러 사람들에게 무엇을 물어야 할지 몰라 어색해하던 저의 모습을 보며, 스스로가 평화를 만들어가는 삶과 얼마나 멀리 있는지를 깨닫게 됩니다.



평화와 통일을 위해 지금 노력해야 할 과제는 분명히 있는 것 같습니다. 그것은 평화를 만들어가는 존재로 계속 거듭나는 것이지요. 지금 바로 옆에 있는 이와 질문하며 대화하는 것조차 어려워하는 내가 과연 통일 이후에 전혀 다른 삶을 살아온 사람들과 어떤 관계를 맺어가게 될까 생각해보게 됩니다. 그저 도움을 주어야 할 대상으로 규정하며 전혀 새로운 존재로 보지 못한 채 오히려 평화를 흔들리게 하는 한 사람으로 살아갈 가능성이 더 클 것만 같습니다.


평화와 화해의 순례를 통해 나와 내 옆에 있는 사람과의 만남이 곧 남과 북의 만남임을, 그것이 곧 이 세상의 평화와 화해를 위한 한 걸음임을 깨닫습니다. 순례를 통해 다른 이들과 소통하며 새롭게 관계 맺어 갔던 경험이, 이제는 저의 일상이 되어야 하겠지요. 평화를 만드는 삶은 그저 조용히 온화한 미소를 띤 채 살아가는 것이 아닌, 역동적이고 생명력 있는 발걸음을 내딛는 것임을 생각합니다. 그 걸음을 오늘도 힘차게 걸어가야 하겠습니다.


김겸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