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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와 화해의 순례

2017 제주 평화와 화해순례 후기-*


평화. 화해. 순례.

단어들에 마음이 뜨거워진다.

평화와 화해가 필요하지 않은 곳이 있을까.

개인적으로 사람이 늘 부대끼고 어렵다.


평화는 무엇인가. 어떻게 일굴 수 있을까.

막연하고 두루뭉실한 채로 순례에 참여하다.





첫날, 사전행사로

제주 4.3 기념관과 다랑쉬굴·오름을 갔다.


제주도의 아픔을 처음 마주한다.

이념대립의 희생양.

전쟁기지, 난징대학살 등 전쟁도구로 몸살을 앓는 제주.

몰랐다. 알려고 하지도 않았다.


무력해보이는 이 걸음이

희망이 될 수 있을까?

제주에 평화가 오게 하는 일에 "점"이 된다면

과연 그러하다.


저녁엔 신한열 수사님의 인도로(?) "떼제기도"를 드렸다.

생소하고 낯설었지만

짧은 선율과 단순한 가사의 반복이 주는 울림이 있다.

별다른 설교나 강해는 없었다.

이어지는 성경 읽기와 침묵,

집중은 안 되나 인상적이다.





둘째날, 조모임을 하고 송악산으로 이동했다.

올레길 10코스를 걷다.


큰넓궤.

몇몇을 제외하고 참가자 모두 동굴 속에 들어간다.

엎드려 기어서 갈 정도로

좁고 길며,

어둡고 춥다.


이런 데를 어떻게 들어갔을까.

은신하며 숨 죽여 지낸 지 겨우 두 달,

기어이 발각 되어 학살 당하다.


어둠에 촛불을 밝힌다.

희생자의 넋을 위로하며 예배하다.


일정상 알뜨르비행장은 못 가고 숙소로 돌아왔다.

저녁 떼제기도와 부활놀이 시간.

하루가 저문다.





마지막날, 외돌개로 이동했다.

올레길 7코스를 걸어 강정마을로 향하다.

걷다보니 저 멀리 군사기지로 쓰였던 흔적이 보인다.


성프란치스코 평화센터.

문정현 신부님을 뵙고, 성찬을 나누고, 김동원 활동가님의 이야기를 듣다.


십여 년을 해군기지 반대와 진상규명을 위해 싸웠다는데

나는 이제야 듣는다.

진실의 인양은 이리도 더디다.


숱한 반대에도 기어이 해군기지가 들어선다.

성산읍엔 제2의 공항과 함께 공군기지가 들어올 예정이란다.

안그래도 아픈 제주를 왜 자꾸 헤집어 놓는지.


평화와 화해의 순례 2박 3일.

이런 기회가 아니었다면

오지 않았을 곳.

걷지 않았을 길.

몰랐을 이야기다.


쉬멍 걸으멍 들으멍

평화감수성이 싹튼다.


평화란 무엇인가. 어떻게 이룰 수 있나.

여전히 막막하다.

소위 우리가 생각하는 평화로운 방식은 아니다.

싸우고 목소리를 높이고 투쟁하고 피흘려야

겨우 한 평의 평화가 올 뿐이다.


누구에게 평화인가. 누구를 위한 평화인가.

우리의 평화인가. 나에게 평화인가.

커다란 담론 앞에선 그 경계가 분명한데

사소하고 시시콜콜한 삶의 문제에선 모호하다.

여전히 내겐 숙제다.


섬은 낭만적이지 않다.

고립의 위협이 있다.

제주를 다시 바라본다.

"전쟁기지 없는 제주, 불어라 평화의 바람"

염원하며 길을 나선다.


내가 만들어가야 할 평화는 어디인가.

먼저, 내 자신과의 화해부터 시작하면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