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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와 화해의 순례

2017 제주 평화 순례를 다녀와서-수지님

항상 제주도는 아름다운 자연을 감상하기 위해 찾았었다. 하지만 그 아름다움 이면에 아픔들이 스며있다는 것을 알음알음 들어오다가, 마음먹고 ‘평화순례’라는 이름으로 다시 오게 되었다. 곧 군대에 입대하는 동생 성현이의 군 생활도 걱정이 되어 마음먹고 데리고 가게 되었다. 



첫째날 



▶ 4·3 평화 공원 가다


제주 민간인 학살과 처절한 삶을 기억하기 위한 평화 인권기념공원. 성현이에게 열심히 43사건에 대해 설명하며 위령탑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각명비에 갔다. 내가 생각했던 것 보다 더 상상초월이었다. 어린 아이부터 노인 불문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이름이 새겨져 있던지. 성현이도 이야기 들을 때는 시큰둥 하더니 명비를 둘러보며 “여기에 새겨지지 않은 이름 모를 사람도 있지 않아?”, “4살짜리도 있네..” 라며 꽤 놀란 눈치였다. 공원을 떠나며 성현이와 함께 방명록을 남겼다.


‘잊지 않겠습니다.’






▶ 4·3사건 유적지, 다랑쉬굴


1948년 겨울, 종달리 주민 11명이 피신해 살다 발각되어 집단희생 당한 곳. 더욱 충격적인 건 유족들도 빨갱이로 지목당해 죽을까봐 가족이 죽임당했다 말하지 못한 아픔까지 더해져 있었다. 결국 희생자 11구의 유골은 44년만인 1992년 발굴되었다. 이곳에서 우리는 떼제 찬양 부르며 죽임당한 영혼들을 감히 위로하였다. 




▶ 오름의 여왕, 다랑쉬오름


학살의 현장인 다랑쉬굴에서 300미터밖에 떨어지지 않은 곳에는 오름의 여왕이라는 별칭을 얻고 있는 너무나 아름다운 다랑쉬오름이 있다. 다랑쉬란 산봉우리의 분화구가 마치 달처럼 둥글게 보인다 하여 지어진 이름이라고 한다. 다랑쉬오름을 오르다보면 귀여운 오름이 눈에 들어오는데, 다랑쉬오름의 축소판이라 하여 ‘아끈’(작은) 다랑쉬오름이라고 부른단다. 귀여운 아끈다랑쉬오름을 품고 탁 트여있는 제주 풍경을 보며 모든 잡념이 사라짐을 느꼈다. 







▶ 첫째날 마무리 


바깥 일정을 마무리하고 서귀포 성당 게스트하우스에 짐을 풀었다. ‘성당’의 게스트하우스에서 잔다는 것이 나에게는 사실 새로웠다. 개혁주의, 개신교, 고신이라는 이름으로 나를 제한시켰던 20년을 너머 종교와 나라 초월하여 다양한 기독교 공동체, 가톨릭, 개신교, 심지어 무교(는 우리 동생) 까지.. 그리고 한국, 대만, 홍콩, 일본, 미국, 프랑스 사람들 함께 모여 제주 순례를 온 것이 나에게는 품을 넓혀 평화를 향해 한 발짜국 뗀 사건이었던 것이다.


저녁식사는 지혜간사님의 수고로 맛난 유기농 채식 밥상이 차려졌다. 마파두부 덮밥과 손수 갈아 만든 땅콩 소스 곁들인 샐러드! 육식을 사랑하는 우리 동생도 맛있다며 잘 먹더라. ‘제주에 오면 고기국수랑 흑돼지고기는 먹어야지’ 하는 편견을 말끔이 씻겨주었다.   








둘째날 



▶ 송악산 둘레길 


제주에 산이라고는 한라산밖에 몰랐는데, 송악산이라는 새로운 제주의 산을 알게 되었다. 1시간 조금 넘게 둘레길을 돌며 아름다운 풍경을 몸과 마음으로 느꼈다. 하지만 제주는 과연 아름다운과 아픔이 공존한다. 일제 동굴진지의 흔적이 존재하고 있었다. 일본이 태평양전쟁 말기, 수세에 몰린 나머지 제주도를 저항 기지로 삼고자 했던 증거라고 한다. 또 송악산 주변에는 알뜨르 비행장이 있는데, 일본이 난징대학살을 하기 위해 전투기에 주유를 한 거점이다. 일제강점기 시대는 지나갔지만 그 잔재를 청산하지 못해 43사건이라는 비극이 일어났고 지금은 강정마을 해군기지가 진행중이다. 심지어 앞으로 다가올 공군기지까지.. 제주도는 언제까지 전쟁과 폭력에 이용당해야할까.   







▶ 직접 들어가본 큰넓궤굴


점심으로 김밥을 먹고 큰넓궤굴을 갔다. 굴에 들어가본다길래 꽤 널찍한 통로의 굴인줄 알았는데 웬걸, 납짝 엎드려 기어가야만 통과할 수 있는 곳이었고 울퉁불퉁한 현무암에 찍혀가며 들어가려니 너무 힘들었다. 이곳을 동광리 주민들은 한 겨울에 왜 도망쳐야하는지도 모르는채, 오직 살기 위해 들어왔다. 안에는 실제 사용하던 그릇들이 깨져 그대로 널부러져 있었다. 안쪽 공간으로 겨우 들어온 우리는 다시 떼제 찬양을 불렀다. 결국 발각되어 죽임당한 동광리 주민들과 모든 고통당하고 있는 생명들을 위해, 촛불을 나누고 그들을 위해 분명 눈물 흘렸을 예수님과 함께 기도하고 노래했다.


“주님, 정의가 꽃피는 세상, 평화 가득한 생명 나라.

주님, 정의가 꽃피는 세상, 이땅 위에 이루어 주소서.”


   



▶ 마무리


이후에도 다양한 일정들이 있었지만, 글이 너무 길어지는 것 같고, 실제로 참여해보길 바라는 마음으로 이만 줄이기로 한다. 


강정마을 평화운동가 김동원님의 말이 기억에 남는다. 


“왜 우리의 평화를 군대와 전쟁에만 맡겨야 하나요?

우리만의 방법으로 각자는 모두 평화에 참여할 수 있는데 말이죠.” 


평화순례를 마치고 일상으로 돌아왔다. 

나와 우리의 평화를 국가 권력에만 맡기지 않고, 평화를 위한 행동들 실천하기를, 그리고 함께 하자고 초대하기를 다짐한다.